안녕하세요. '기독교 페미니즘 플랫폼 - 타래'입니다😊 뉴스레터 2호가 구독자님을 찾아왔습니다! 요즘 타래는 11월 14일(토) 창립파티를 앞두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요. 타래의 얼굴이 될 로고를 정하고, 타래를 소개할 홈페이지와 리플렛도 만들고 있어요. 짜잔🎉 뉴스레터 맨 아래에 있는 창립파티 웹자보에서 타래의 새로운 로고도 살펴봐 주세요. 😎
그리고 지난 10월 4일에는 1박 2일 동안 운영위원회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운영위원 박혜은 님이 따끈따끈한 워크숍 현장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어 후원회장 서소영 님은 책 『신학교육의 종말』을 읽고, 타래의 시작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나눠주셨어요. 오늘 뉴스레터도 반갑게, 그리고 찬찬히 읽어주세요!
[운영위원회 워크숍 후기]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요15:15)
박혜은 | 타래 운영위원
10월의 어느 소중한 대체공휴일, 북적거리는 서울 도심, 한 공간에서 세 번 정도 본 (아직은 낯선)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포토이즘에서 사진을 찍으며 유쾌하게 웃고 있는 극내향인 집순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아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러니까 낯선 사람들과 어떤 일을 했기에, 그는 웃고 설레고 있을까.
그 낯선 하룻밤에 그들은 모여 일단 먹고 마셨다. 쌈밥을 먹고 토마토 맥주를 나눠 마셨댔나. ‘알쓰’인 집순이는 칭따오 논알콜 레몬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바깥에서 먹고 마시는 일도 ‘짐’인 극내향인 집순이는 놀랍게도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처음 이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오랫동안 찾고 있던 시공간의 문이 열린다는 느낌이 정확했단 걸 깨달아간다. 이제 기독교 세계에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없는 걸까, 난 이대로 ‘도태 그리스도인’이 되는 걸까 불안했던 마음에 불이 켜진 경험이었다고.
우리가 풀고자 하는 것, 그래서 잇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윤곽을 그려가는 회의 시간에 작은 부엌 창 너머로 빗소리가 들려온다. 빗소리를 들으니, 신앙의 길 안에서 예배하고 생활하며 가졌던 갈증과 감정이 아련하게 떠오르는데…. 이를테면, 가부장적 하나님을 그리는 남성 스피커의 해석을 평생 ‘설교’ 형식으로 듣고 자랐고 지금도 들어야 하는(…) 삶의 회한 같은 것. 남성 결정권자들이 결정한 시스템에 거하며 들었던 이질감과 구태의연함 같은 것. 그러니까 내가 겪었던 고초(그들만의 성스캔들과 권력 및 돈 다툼)에 대한 피곤함 같은 것들.
한편, 묵을 대로 묵은 어떤 제도와 시스템 안에 잠들어 있는 누군가와 일부러 잠자는 사람들의 얼굴 같은 것도 떠오른다. 나 자신일 수도 있고 내 곁에 어떤 자매일 수도 있는 그 얼굴. 진행의 신인 우리의 ‘새말’님이 나눠주신 감정 카드에서 ‘참담하다’와 ‘안심하다’ 두 개를 뽑은 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내 위치를 정확히 드러내는 감정. 이 도시에서 잔뜩 긴장한 채 사는 여성이자 기독교 세계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많은 순간 참담한데 그 세계에 새로운 언어와 공간을 만들고자 모인 이들 속에 거하는 안심.
도시의 밤이 깊어질수록 참담함과 안심이 교차하며 엉클어진 마음의 타래가 실마리를 찾는다. 이곳이 바로 ‘기독교페미니즘플랫폼 타래’가 시작되는 곳. 엉망진창 참담하게 엉킨 ‘나’와 ‘너’의 ‘기독교, 페미니스트’라는 타래를 풀어 새로운 언어로 다시 쓰고 엮어 다른 타래로 엮기 위한 이야기들. 그렇게 엮은 타래를 다시 풀어 기독교 세계가 페미니즘의 언어로 더욱 온전하고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모의하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는 서울의 밤, 도시에서, 낯선 이들과 친구가 된 이야기이자 그 낯선 이들이야말로 내 친구였음을 발견한 이야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질문, 같은 갈망 혹은 이와 비슷한 종류의 감정 그리고 감각을 느낀 누구나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 손에 쥔 이 ‘타래’를 느슨하게 만들어본다.



[서평 & 타래로의 초대]
함께, 우연히, 흔들릴 수 있다면 ― “신학 교육의 종말”과 “타래”의 시작
서소영 | 타래 후원회장 /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역사학과 부교수
시작도 전에 “끝”이라니 좀 뭣하지만, “종말”을 상상하는 것은 늘 힘이 된다.
200년 전에도 “끝”과 “시작”은 맞물려 있었다.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로 부상하던 장로교 목사, 라이먼 비처 (Lyman Beecher, 1775-1863)는 자신의 세계/질서가 무너져 가고 있음을 알아 차렸다. 오래된 “기존질서 (Standing Order),” 즉 가족-교회-국가가 하나의 공적 세계로 작동하던, 익숙하고 편안했던 그 세계는 자신의 발 밑에서 갈라지고 있었다. 이는 목사인 그에게, “영원토록 이어질,” “타락의 속박,” “우리 조상들” 청교도들이 세운 체제의 종말을 뜻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였다.(3)
대안은 확 다른 신학교육. 이민자들이 폭발적으로 몰려 들던 19세기 초, 당시, 미국의 “서부”였던 지금의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그는 “인종통합”과 “노예제폐지”라는 시대의 의제를 가슴에 품고, “레인 신학교” (Lane Theological Seminary)를 시작했다. 공적인 세금과 국가의 협력이 사라지면 어떤가? 이제 각성한 개신교인들이 “자발적 결사체”로 모여, 세금보다 더 많은 헌금을 낼 것이다. 아울러 비처는 끝없이 펼쳐진 서부를 주목했다. 신시내티는 곧 개신교 팽창과 성장을 담당하는 “서부의 런던”이 될 것이고 바로 이곳에서, 그는 영적, 물질적, 문화적 쇄신의 선구자, (남성)목회자들을 양성할 터였다. 비처는 레인 “신학교가 자발적 결사체의 열쇠이고, 자발적 결사체가 서부의 열쇠이며, 서부가 미국의 열쇠이고, 하나님의 천년 왕국이 시작될 땅인 미국이 세계의 열쇠”라고 여겼다.(6)
시작은 좋았다. 비처같은 스타 목사가 총장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호 아서 태판 (Arthur Tappan, 1786–1865)은 2만 달러의 기부를 약속했다.(7) 오늘날의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약 78만 달러, 한화로 1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1832년, 레인 신학교는 그렇게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미 동부 최고의 설교자, 신학자, 사업가, 노예 폐지론자들이 모여, 새로운 시대, 대안적 신학을 꿈꾸며 시작했다.
불과 2년만에, 그러나, 레인은 지독한 난관에 봉착한다. 1834년 말이되면, 가을학기를 시작한 103명의 학생 중 단 8명 만 남게 된다. 한 때, 비처 목사의 명성으로 다시 40여명의 재학생을 모으기도 했으나, 저자인 테드 스미스 (Ted A. Smith)는 강조한다. 레인 신학교는 초기의 야심과 결의를 결코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고. 19세기 내내 그리고 20세기 초, 간신히 버티던 레인은, 결국 설립 100주년이 되던 1932년, 오하이오에서의 신학 교육을 중단했다. 도서관과 남은 교수진 및 학생들은 시카고의 맥코믹 신학교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로 이전했고, 한 때 캠퍼스였던 그곳은 현재, 고급 자동차, 캐딜락 대리점이 되었단다.(13-14)
돈, 실력, 다 있었던 레인신학교는 왜 문을 닫게 되었을까? 저자의 두 가지 지적이 마음에 남는다. 물론, 내 개인적인 독해다.
첫째, 비처 목사는 결과적으로 적당한 다원주의를 원했다.
“인종이 통합된 신학교”는 상상 할 수 있었으나, 노예제가 폐지된 세상, 그 평등을 급진적으로 밀고 나아가는 신학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즉, 흑인 학생은 받을 수 있으나, 그 학생이, 레인 신학교의 총장이 된다거나, 비처의 친구가 되어, 같은 식탁에서 자유롭게 먹고 토론한다거나, 장래, 비처의 손자 손녀가, 그 흑인 총장의 며느리, 사위, 혹은 제자로 어울리는 세상은 여전히 불편했다. 관용은 베풀겠지만, 위치가 뒤바뀌는 섞임, 혹은 권력의 양도는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이 불균질한 세상에서, 중도와 타협을 비판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희진 선생이 잘 지적했다. 페미니즘도 역시, “협상의 언어,”(80) 타협과 모순의 언어일 수 밖에 없다. 모든, 비주류, 마이너리티, 사회적 약자들이 다 그런 운명이다. 왕과 대화하려면, 왕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지난한 과정이다. 이중, 삼중, 아니 몇 겹의 언어와 뉘앙스를 연마해야 한다. 실질적 변화는 더 느리다. 헌데, 그런 “비주류 언어/인식”의 진창에서 질척거리는 수고를 전혀 할 필요가 없었던 1832년의 비처 목사는, 결국, “모호하고 양면적인 태도,”(20) 혹은 부드럽지만 애매한 언어 사용, 혹은 혼란을 가중시키며 얽혀 있지만 “중간” 이라는 착각을 유발하는 자리에서 “통합”을 모색했다.
그는 이해 했을까? 백인 우월주의가 “보편”인 세상에서, “자유로운 흑인”은 “살아있는 모순이자, 그 존재 자체로 전체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 (11)였다는 것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곧 하나님”인 세상에선, “자유로운 여성/퀴어”는 그 존재 자체로 모순이고 반역이고 불경이고 금지다.
사실, 학생들은 이미 저만큼 앞서 가고 있었다. 1834년 초, 복음주의 부흥운동과 노예제 폐지운동에 깊이 참여했던, 시어도어 드와이트 웰드 (Theodore Dwight Weld, 1803-1895)와 동료 학생들은, 아흐레 동안 매일 밤 두 시간 반씩 총 45시간에 걸쳐 열정적으로 토론했다. 부흥회 집회와 유사하지 않나? 당시 신학교의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던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 c. 1810-?)는 엄청난 말솜씨로 노예제의 끔찍한 실상을 풀어냈단다. 긴 토론 끝에 학생들은, 즉각적인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고, 자유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추방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아울러, 그 결단을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썼다. 같은 해, 신시내티에는, 흑인 공동체, 레인 신학교 학생들, 아서 태판과 같은 기부자들이 힘을 모아, 5명의 교사와 200명 이상의 학생을 둔, 네 개의 흑인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설립, 운영되었단다.(8-9)
당연히, 반대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이사회, 저명한 교수, 그리고 백인 테러의 위협까지. 학생들은 그런 급진적 활동이 아니라, 신학생 본연의 임무, 즉 “신앙 교육” 및 “선교 활동”에 매진해야 한다고 반대자들은 불평했다.(10) 비처는 “절충”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불꽃같은 논쟁과 결단으로 “지금, 여기”에서의 변화에 기꺼이 헌신하려던 학생들을 쫓아내 버린 셈이 되었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거침없는 토론을 이끌던 학생들이 사라지자, 학교는 곧 생기를 잃었다.
둘째, 비처에게 “제국/식민주의”란 남의 이야기였다.
사실, 비처 목사의 서부 팽창 비전은, 당시 성장해 가던 영-미 제국 논리의 또 다른 변주였다. 앤서니 G. 홉킨스는 거듭 지적한다. “1833 영국 제국 내 노예 해방법은 복음주의자들과 인도주의자들이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이른바 합법적 상거래로” 자유무역, 중단 없는 경제 발전에의 국제적 캠페인에, 의심 없이, 열정적으로 참여하라는 독려였다고.(171) 노예제 폐지라는 대의에 수긍했다고 해서, 즉 영혼의 평등에 동의한다고 해서, 미국의 개신교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결코, 부와 사회적 지위의 평등에 수긍한 것은 아니었다.
1776년에서 1850년 사이, 미국의 개신교회 신자 수는 두 배로 증가했다. 성공을 섭리로 치환하고,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덕성과 죄의식으로 해석하면서, “미국의 예외주의”에 입각한, 물질적 야망과 영적 사명의 교묘한 결합은, “1783년 이후 (미국) 대륙 확장 과정에서 열렬히,”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317)
비처 목사는, 분명, 시대를 읽고 있었다. 서부를 향해 눈을 돌렸고, 새로운 재정모델, 대안적 신학, 심지어 노예제 폐지와 인종 통합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자신의 세계가 어떻게 팽창하던 영국/미국의 제국 논리와 착종되어 있는지 살필 수는 없었다.
비처의 한계, 그리고 레인 신학교의 씁쓸한 퇴장은 그러나 허망한 종말 만은 아니었다. 오직 남학생만 받았던 레인 신학교에 “여성” 이라는 이유로 입학도 하지 못했던 비처의 딸, 해리엇 (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은, 치열했던 1834년의 그 토론에 참여 했었다. 1836년 아버지의 동료 교수였던 캘빈 스토우(Calvin Ellis Stowe, 1802–1886)와 결혼하고 메인 주로 옮긴 후, 그녀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면서, 19세기 미국의 베스트 셀러,『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1852)을 집필했다. 이 작품도 나름의 한계가 있지만, “북부의 백인들이 노예제를 그 본연의 흉악한 실체로 인식하도록 돕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 스미스는 평가한다.(25) 레인의 신학적 이상은, 그 학교에 입학도 못한 한 여성의 펜 끝에서, “소설 창작”이라는 형태로 피어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학교가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말년에 매도한 부동산은, 신학교 주변 지역에 흑인 자산가 공동체를 육성하고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학교가 망해가는 과정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시절의 모호한 정의 선언으론 결코 일궈내지 못했던, 실질적 공헌-흑인 자산가 양성-을 마침내 이룩한 것이다.(26)
200년 전 비처 목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저자 스미스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성찰한다. “백인/미국인/남성/이성애자/주류개신교단 출신….” 현재의 그는 200년 전의 비처와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 어정쩡한 죄책감 대신, 그는 “불협화음과의 공존”을 주문한다. 도망치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기.” 자신의 “백인됨”이 도전받고, 의심받고, 불안정해 지는 그 자리에서, 제대로 흔들려 보기.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도 있는 “흑인, 유색인종, 원주민 사상가”들에게 감동받고, 함께 진동할 수 있는 공력.(17-18)
정희진도, 최근 출간한 책에서 거듭 주장했다. “서로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긴장과 불편함을 견디는 일,” 이것이 바로 “격렬한 평화”의 근간이란다. “새로운 말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새로운 인간성의 출현을 희망하면서,”(216) “다른 언어, 다른 형식, 다른 도구들”(22)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며 버티는 힘.
결국,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대안은 그래서, 기존의 “고지” 혹은 지배적 위치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20) 또 한 명의 새끈한, 중후한 음성의, 매너 좋은 (남성)신학목회자가 우리의 희망일까?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또 하나의 “보편”을 가장한, 그러나 전혀 새롭지 않은, 충고와 권고들로 “화내지 마세요,” “좀 더 기다리세요”를 되풀이 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희망의 토대가 될 수 있을까? 그럴지도. 그러나, 격렬한 평화, 함께 공명할 수 있는 내력의 씨앗들은 이미 완성된 고지대들에선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어디일까? 지금, 여기, 인공지능이 신세계를 여니, 종말을 가져오니, 새로운 인간을 정의하니, 빠르고 강하게 약한 것들을 밀어내는 시대에, 스스로 은폐하는 권력의 보편 지향성을 꼼꼼히 읽고 해체 하려는 사람들. 성(sex)과 종(species)을 매개로 몸들을 차별하고, 전시하고, 매매하는 세상. 그 세계의 논리를 넘어 서고자, 함께 삶을 추스리려는 사람들. 데이터로, 채무로, 인간의 존엄과 윤리의 기반이 단순화 되고 추상화 될 때, 그 저류와 복잡다단함을 묻고, 또 묻는 사람들. 때론 휘파람으로, 때론 비명으로, 광장에서 다락방에서, 미디어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다름을, 그 소통을 엮어 가려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작은 창조, 그 때와 장소.
망하거나 없어지는데, 그런데, 그런, 창조의 순간들이 쿵 하고 내리 꽂힌다. 연속해서 흐르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은 역사 속의 한 순간으로, 시간의 한 축이, 작은 만남들이 새롭게 엮였다가 풀리고, 한 젊은 애(들)과, 한 세대와, 한 장소와, 한 언어가, 그 너머로, 시간 안으로 파고들어, 존재 자체로 풍성하게 생명을 누리게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의 찰나, 벅찬 존재의 경험으로 나와 당신을 초대한다.
딱 1년만 아니 6개월만 파일럿처럼 해 보면 어떨까? 타래의 시작을 모색하면서, 후원회장이 된 나는 퇴로부터 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가 올지, 뭐가 될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실패”가 되지 않게 하려고, 미리, 임시라고, 가볍게 퉁치고 사라지자고. 나는 내가 그 때와 장소를 컨트롤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망하면 어떤가. 레인 신학교 처럼. 그렇게 하나 씩 둘 씩 팔아 치우고, 모색 끝에 다른 곳에 엮여 사라지더라도, 모였다가 흩어진 “레인 반란군”들이 또 다른 장소와 시간에, 한층 더 단단해진 모양새로, 인종의 벽을 넘고, 급진적 환대를 위해 나아갔던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토론장 한쪽 구석의 여성 해리엇이, 부동산 매각이, 레인 신학교의 작은 이상을 실현 한 것처럼, 타래도 그렇게 우연히, 엮이고 풀리고 또 엮이면 그만이다.
타래의 시작에 『신학교육의 종말』이라는 책을 만난 것 부터가, 복된 조짐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우연히, 함께, 흔들리는 자리로, 떨리는 순간으로, 한 걸음, 다가 오시기를 나직이 바래 본다.

참고한 책들과 인용문들
▮Ted A. Smith, The End of Theological Education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23), Introduction, pp. 1-26. (글을 쓰기 위한 번역은 Deepl.com을 이용하고 필자가 최종 체크했음)
▮앤서니 G. 홉킨스 지음, 한승훈 옮김, “미제국연구: 미국 예외주의 신화를 넘어” (너머북스, 2025) A.G. Hopkins, American Empire: A Global Histor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8)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서울: 창비, 2026)
▮“하나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곧 하나님이다” Mary Daly, Beyond God the Father: Toward a Philosophy of Women’s Liberation (Boston: Beacon Press, 1973), p. 19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오드리 로드,『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박미선 옮김(후마니타스, 2018), 178쪽.
▮본문 괄호 속 숫자는 각 문단이 인용하고 있는 책의 쪽수이다.

우리가 함께 엮어갈 타래의 활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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